— 논어
선생님은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는 만큼만 학생들을 설득할 수 있으며 또 그 만큼만 가르칠수있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과 자기를 교육하는 일은 결국 한가지 일이고 같은 일이다.
— Oscar Wilde
요약-이갑수
모든 일은 시작하는 순간 반으로 요약된다
배부름은 첫술에 요약되어 있다
어떤 술도 그 맛은 첫잔과 마주한 사람이 나누어 좌우한다
귀뚜라미는 소리로서 그 존재를 간단히 요약한다
평행한 햇살을 요약하여 업은 잎사귀 하나 아래로 처지고 있다
방향은 가늘게 요약되어 동쪽은 오로지 동쪽만을 묵묵히 담당한다
요란한 것들을 집합시켜 보면 사소한 것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물질은 한 분자에 성질을 전부 요약하여 담는다
한 방울 바닷물이 바다 전체를 요약하고 있다
서해는 서해를 찾아드는 모든 강의 이름을 요약한다
목숨은 요약되어 한 호흡과 호흡 사이에 있다
파란만장한 생애는 굵고 검은 활자로 요약되어 부음란에 하루 머무른다
하루살이는 일생을 요약하여 하루에 다 산다
너는 모든 남을 요약하여 내게로 왔다
— 법정
@Chocoberryp: 실연당한 여자가 공원에서 울고 있었다.
한 철학자가 이유를 알고 위로하는 대신 웃으며 말했다.
「너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잃은것 뿐이다.
하지만 그는 그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잃은 것이다.
너는 왜 괴로워하는가?
정말로 괴로운 것은 그의 쪽이다.」
존재가 시드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썩는 것과 마르는 것. 아름다움이 절정을 다한 뒤에도 물기가 남아 있으면 썩기 시작한다, 그것이 꽃이든, 음식이든, 영혼이든. 그러나 썩기 전에 스스로 물기를 줄여나가면 적어도 아름다움의 기억은 보존할 수 있다. 이처럼 건조의 방식은 죽음이 미구에 닥치기 전에 스스로 죽음을 선취함으로써 영속성을 얻으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게 아름다움은 순간적인 매혹의 대상이 아니다. 어서 네 안의 물기를 말려버리라고, 피와 살을 증발시키라고, 어딘가로 달아나라고, 늘 방부제나 건조제를 서둘러 찾았을 뿐이다. 마른 열매와도 같은 정신에 하루 빨리 도달하려고 젊음을 앞당겨 반납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책상 위의 마른 석류를 들여다보니 주변에 검붉은 가루가 흩어져 있었다. 몇 년째 썩지 않는 석류를 보며 ‘불멸’이라는 말을 떠올리기까지 했는데, 그 단단한 껍질을 뚫고 작은 벌레들이 기어나오고 있었다. 아, 육체란 얼마나 덧나기 쉬운 것인가. 견고해 보이는 고요와 평화 속에는 얼마나 많은 관능의 벌레들이 오글거리고 있는 것인가. 석류를 손에 들어보니 어느새 바람 빠진 공처럼 물렁물렁해져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삶이란 완벽한 진공 포장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차라리 안도했다. 그리고 내 풍장의 습관도 앞으로 몇 번이고 생명의 기습 앞에 무릎 꿇어야 하리라는 걸 예감했다.
- 나희덕 시집, 사라진 손바닥/뒤표지글 중
‘칼을 든 손의 손놀림도 중요하지만 사과를 든 손의 손놀림도 똑같이 중요하다. 사랑은 이렇게 오른손과 왼손이 조화롭게 움직이며 사과를 깎는 것과 같다. 어느 한 손이라도 엇박자로 움직이면 칼에 손을 베어 사과에 피멍이 들고 만다. 피를 본 후에 사과하는 것은 사과에 대한 예의도 사랑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